낸시 프레이저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를 병렬로 읽고 있다. 프레이저는 하루에 한 챕터, 리스펙토르는 잠이 오지 않을 때 침대에서. 마음먹은 게 아니라 읽다 보니 그렇게 됐다. 루쉰과 위화의 소설도 간간히 읽는다. 나는 집 안에 있는 게 좋다. 집 같지 않은, 바깥 세상과 선뜻 분리되지 않는, 큰 창으로 온갖 바깥 소리가 들어오는, 조그만 이 공간이 좋다. 멀리 있는 영화관이나 샵에 가려면 이동 시간과 각종 가격표들을 고민해야 하고, 길에서 군것질거리를 사서 허기를 달래야 하고. 집에 있으면 그럴 일이 없다. 집에서도 영화는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고, 그게 별로면 책을 읽으면 된다. 배고프면 집 앞 시장에서 재료를 사다가 만들어 먹으면 된다. 그런 것만 가능하다면 나는 어디든 집이라고 부를 준비가 되어있고, 여긴 어엿한 우리의 집이 된 거다. 영화를 보기 위해 거쳐야 하는/마주쳐야 하는 구매의 단계들이 내게 번잡하고 거추장스러우며 여러 부작용을 수반한다는 걸 요즘에야 언어로서 깨달았다. 돈을 내고 사는 영화적 체험, 정서적 고무가 어쩔 땐 그다지 즐겁지 않다는 걸 말이다. 영화관에 가는 건 그 모든 과정을 원하고 행할 준비가 되었을 때, 그저 발길이 닿을 때, 그것들이 내게 다가올 때 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요즘 읽고 있는 책들도 이런 나의 근황을 잘 드러내 주는데, 여행과 돈을 고민하고 정신을 잃었다가 곧추세우며 생활을 모종의 방식으로 정렬하는 연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 가는 일이 몇 안 되는 일정의 대다수 혹은 전부이고, 이외에는 빵이 먹고 싶다거나 휴지를 사야 한다거나 그런 짧은 외출들이 있다. 정말로 단촐한 생활이 이어진다. 가장 큰 타인과의 상호작용은 책을 만들기로 한 친구들과 달에 한 번 꼴로 만나는 일정이다. 그러나 특별하게 몰두하고 있거나 공들이고 있는 작업은 없다. 아직 구체화된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계획은 그저 약속에 가깝다. 나는 단지 책을 많이 읽고 있을 뿐이다. 이것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실로 믿으면서. 그래선지 요즘은 일을 더 하고 싶단 생각을 하고 (파블로프롤레타리아) 이외에도 간간히 들락이는/들려오는 외국어, 곁에 있는 존재의 숨소리처럼 생동하는 음악… 이런 것들이 내 일상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