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0일 토요일

요즘에는 인간-되기의 (수용의) 과정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추한 게 싫다. 추해지기 싫다. 사는 건 추한 일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싶지가 않다. 그걸 참을 수가 없어서 자주 고통스럽다. 우리가 태어나길 알량한 존재라도 대쪽 같고 싶고, 단정하고 싶고, 잠자코 장엄함을 믿고 싶다. 우직하게 서 있고 싶다. 지층과 나무와 같아지고 싶다. 침묵하고 싶다. 그렇게 고상하고만 싶다. 그치만 그건 오만한 생각이다. 사는 건 추한 일이다. 내가 먹고 자고 싸는 모든 것에서 머나먼 누군가에게 죄를 짓는다. 내가 내뱉는 모든 말과 자취가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아무것도 해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는 없다. 태어난 이상 무결할 수는 없다. 그러려면 죽으면 된다. 오히려 산다는 것은 샅샅이 더 추해지는 일이고 그걸 낱낱이 견디는 일이다. 예전에는 그렇게 삶이 생생하게 지각되는 순간이면 반사적으로 죽자,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런 사고의 매커니즘에서 멀어진 지 정말 오래되었다. 추한대로 산다. 사람 살듯이 산다. 사는 건 추해지는 일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기쁘다. 오래오래 추한 꼴 보이며 살고 싶다고까지 생각한다. (미스터 추, 입술 위에 추, 추사랑? 그렇다고 추잡해지면 안 되는데 그 방법은 아직 모름) 

그동안 몇 번 더 일기를 남겼는데 모두 비공개로 업로드했었다. 그렇지만 이런 일기를 쓰니까 어쩐지 안부를 전할 용기가 나서 오랜만에 이렇게...

2023년 12월 20일 수요일

오랜만에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다. 엊그제 밤에도 잠은 못 잤지만 한 이벤트에 대한 소회로 잠이 안 오는 건 오랜만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늘상 이런 상황에서 잠 못 이뤘던 이유는 끝없이 곱씹어보는 성찰이고 점검이다. 어떻게 보였으려나? 시뮬레이팅 한다. 오독되는 게 겁난다. 오랜 습관인데, 버려야 할 버릇인가 잘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봤다. 면접에서는 많이 부끄러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몽상가에 가깝지 변혁가와는 거리가 멀다. 그게 들켜서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딱히 진솔했는지도 모르겠어서 여전히 아쉽다. 다정이는 나에 비해서는 몽상가 기질이 덜하다. 솔직하고 잘 융화한다. 21세기 지구인의 시각으로는 매력적이고 똑똑한 사람이다. 물론 내 눈에는 최고로...


늘 남이 바라보는 나에 대한 시선을 상상하는 일이 익숙하다. 어디선가 나는 아주 시니컬한 사람이고 어디선가는 느슨한 사람이다. 나는 그 어디에도 있지 않고 가닿는 차가움보다는 뜨겁고 보이는 딱딱함보다는 헐겁다. 또 보이는 헐거움보다는 딱딱하다. 생각과 몸과 말이 다른데, 사람들은 생각은 모르고 몸과 말로만 나를 접하니까, 그럼 그게 그냥 나인 건가? 그럼 그 사람들은 내가 쓴 글로 생각을 들여다보면 뭔 생각을 하려나. 다를 바 없을 것도 같다. 종종 극단적으로는 발화하는 몸의 매커니즘을 버리고 싶다. 그런데 사실 생각과 표현을 다르게 만드는 것도 나다. 내가 투명하게 보여지기를 원치 않는다. 과연 언젠가는 투명히 살 수 있을까?

그나저나 작가들은 어떻게 자전적 에세이를 쓰지. 너무 내밀해서 마치 팬티 바람으로 나선 기분일 것 같은데...

참도 이상하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하지? 왜 열심히 하지 관성으로 보면 내가 있을 곳이 아닌데. 하지만 관성이 필요한가? 그런 것 없는 사람이고 싶다. 솔직히 얼마나 지루하고 허술한가. 갓 고등학교 졸업한 애들이 학교 안에서 벌이는 일은 다 지루한데 게다가 기숙사에서 기숙사 허락 맡고 벌이는 일이 얼마나 하찮나. 뭔가 더 멋있는 걸 찾아서 해, 이를테면 디제잉 파티를 가든지 전시 퍼포먼스에 참여하든지 하다못해 시 낭독회나 플리마켓. 근데 그런 관성을 버리고 싶다. 늘 하던 거, 멋져 보이고 좋아하던 거 그만 찾고, 이렇게 폼 안 나는 걸 재미있게 할 줄 알고 싶다. 맹맹하게 파티가 끝났고 들인 스트레스에 비하면 훨씬 맹맹한데 또 마주친 많은 얼굴들이 싫지 않다. 싫지 않고 생생하다.

조금 더 느슨해지는 것에 대해 배웠다는 감각이 든다. 더 솔직하고 못생겨도 된다. 짜치는 사람으로 보이는 게 싫어서 종종 애썼는데 사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어찌 보면 그동안 살아온 방식은 그럴싸하게 만드는 것에 주력하지 않았나? 좀 더 과감하게 살려면 열심히 짜쳐야 된다. 그런 용기를 요즘 얻는 것 같다.

학자세 친구들과 글을 쓰는 활동을 해봐도 재미있겠다. 글을 쓰면 서로를 더 많이 알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래서 요즘은 솔직하고 못난 것이 내 화두다. (레퍼런스: 우리선희 이선균)

2023년 12월 13일 수요일

 11월 셋째 주 평일 밤

내 뒤에 따뜻한 게 붙어있다. 따뜻한 것이 내 등에 꼭 붙어서 나를 부둥켜 안고 있다. 새근새근 숨을 쉰다. 나 아닌 생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 눕히는 것 덥히는 것. 마법 같다

언어에는 교란이 있다. 애를 써서 상황을 성문화하는 과정에는, 애를 쓰기 때문에 교란이 생긴다. 쓰려는 욕구가 개입하는 순간부터 순수한 경험은 떠나간 지 오래다. 내가 어떤 것을 느낀다고 적은 게 언제나 진실은 아니다. 날조는 힘이 들지도 악하지도 않다. 감각만이 가장 정직하게 설명할 뿐이다.

많이 아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점점 더 자주 그렇게 느낀다. 그냥 좀 더 많은 시간과 기회면 가능한 일들. 수업 하나 듣고, 책 한 권 읽으면 알게 되는 것들. 나이와 같은 것들. 시간이 지나면 보이는 게 많아지고, 오래 살면 누구나 무엇이든 더 알게 된다. 별 거 없다. 초등학생 때 언니들이 얘기하는 감독의 영화들 하나도 몰라서 다 적어두고 하나씩 찾아보던 그때 이후로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 나는 미술관에 관심이 없다. 언제나 삶은 글자 밖에 있다. 유명한 작가와 감독의 이름 그런 것 하나 몰라도 두 눈 똑바로 뜨고 세상을 마주 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11/28

연희동에서 다정이 사운즈굿 미팅 기다리면서 어떤 카페에 있다가 좋은 굴 파스타와 대구 요리를 먹고, 바늘이야기 데이트를 하고 돌아왔다.

11/29

오랜만에 만난 학생자율세미나에서 다 fuck up 해버리자는 소리를 하소연 담아 구구절절 하고, 야식 거하게 시켜먹었다. 멘토 신청이 다음날까지였는데, 에라이 그냥 잤다.

11/30

부랴부랴 제출하고 망연자실 했다가 포케 시켜먹으면서 줌 수업 들었다. 관악구청 갔다가 한신우동. 요즘 우리는 귤 탕후루에 빠졌다. 설입에 괜찮은 카페도 찾아서 기분 좋게 맛있는 커피 두 잔을 마셨다.

12/01

횡설수설이라도 생존 신고를 해야겠다. 친구들을 위해선지, 미래의 나를 위해선지, 둘 다일성 싶다. 어제는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내 돈 주고 거금 들여 머리를 했다. 아직 돈 쓰는 게 익숙치가 않아서 여전히 세상 사람들은 왜 그렇게 비싼 돈 주고 머리털을 손질하나 싶지만 기분은 좋다. 그리고 서촌에서 데이트를 했다. 미용사가 말하기를 청와대가 있던 동네라 치안이 좋다는데, 골목 골목 여유롭고 단정한 게 신기했다. 서촌은 진또배기 서울이고, 내가 있던 설입이니 성수니 그런 곳은 전부 젠트리피케이션 된 이촌향도 청년들의 가짜 서울이었다. 가게 안에는 서울 토종 혹은 최소 십 년은 살았을 깍쟁이 어른들이 고즈넉히 밥 먹고 술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동네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서 우리도 나중에 이 깍쟁이들 틈에 끼어보자 했다. 좁고 오래된 전통주점에서 마흔 전후쯤 되어보이는 커플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는데, 배부르다고 전을 나눠먹자고 했다. 막걸리도 한 잔 시켜서 우리는 여행객이 된 기분으로 식사를 했다.

12/02

이태원에서 쇼핑을 하고 베트남 음식 레스토랑에서 고급 쌀국수를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뎡이가 계속 딸꾹질했다. 그러고 둘다 진이 빠져서 침대에 내리 누워 유튜브 보다가, 필 받아서 핫도그 돌려먹고 잤다.

12/03

마지막 출근이고 사람이 별로 없었다. 화집을 많이 팔았고, 제법 사람 상대가 늘은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끝나고 다정이와 훼미리 칼국수에서 보쌈 정식을 먹었다. 그 먼 길을 편지까지 써서 와줘서 너무 고마웠다. 서울숲 근처 빈티지샵에 갔다가 카페에서 따뜻한 라떼와 콤부차를 마시고 돌아왔다. 수인분당선을 처음 타봤다.

12/4

오랜만에 독일미학 수업을 끝까지 들었다. 사실 들은 게 아니라 앉아만 있었다. 브레히트는 좀 궁금했는데, 처음부터 집중을 안 하니 영 주의력이 돌아오지를 않았다. 집에 가니까 뎡이가 마라탕 대짜리를 시켜둬서 열심히 먹고, 폐기된 조명이랑 좌식 테이블을 주워왔다. 삘 받아서 침대도 이리저리 옮겨보고 다시 돌려놨다. 씻고 나와서 따뜻한 조명 밑에서 마스크팩 하고 팝콘이랑 맥주 먹는데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 날 일기도 썼다.

12/5

근장 갔다와서 오일 파스타를 해서 전날 가져다놓은 테이블에서 먹고, 낮잠 푸지게 잤다. 전날의 대청소 삘을 이어받아서 다정이랑 설입 온돌에서 고기 먹고, 다이소에 들렀다가 집에 왔다. 비니 쓰고 패딩 입은 뎡이가 아주 예뻤다. 열심히 행거 조립하고, 잠깐 영화 모임 회의도 갔다와서 치킨 시켜먹고, 차도 우리고, 집안일을 열심히 했다. 다정이는 기타 줄을 갈았다.

12/6

이 날도 디자인사는 포기를 하고, 수업과 근장을 다녀왔는데 머리가 좀 아팠다. 다정이랑 제이김밥에서 밥을 먹고 약을 먹고 쉬다가 학자세를 하러 갔다. 8층 계단에서 그래피티 하다가 공유주방에서 새벽 3시까지 자몽 요리 콘테스트를 열었다. 다들 뇌 빠진 소리를 한 마디씩 했다. (열 마디일지도) 일본 근대 시각문화 발표가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다정이가 자료 조사를 도와주었고, 해 뜨는 걸 봤다.

12/7

비몽사몽한 채로 어찌저찌 발표를 끝내고 오니, 완전히 녹다운이었다. 잠 못 자고 밥도 못 먹어서 발표도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그리고 다정이를 만나서 집에 왔는데, 내가 보고 싶었다며 울먹였다. 어디서 이런 천사가 내려와서 나를 이렇게 사랑하지? 싶었다. 나는 내가 못났다며 급 투정을 한바탕 부렸다. 그러고 나니 정말로 못난 생각이 싹 가시고, 나 그리고 우리가 아주 귀엽게 느껴졌다. 다정이가 파스타 간편식을 조리해왔고, 그걸 먹고 커피 모임도 열었다. 돌아와서는 컵라면과 커리를 먹으면서 뎡이가 보고 싶어했던 드라마를 봤다. 이때도 일기를 썼다.

12/8

미술사와 시각문화 기말고사 발등에 불 떨어져서는 대충 지각 제출하고, 다정이랑 잠봉뵈르랑 샌드위치 시켜서 커피랑 같이 먹었다. 나는 잠을 못 자서 좀 자고, 뎡이는 바밍타이거 시사회에 갔다. 내가 데리러 가기로 했는데, 늦어버려서 미안했고 보고 싶어서 힘들었다. 열심히 용산으로 가서 다정이 친구들이랑 퍼멘츠에서 끼니를 달랬다.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 이상했다.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산타옷을 입은 강아지를 봤다. 또 드라마를 보다가 잤다.

12/9

토요일.

영화 모임 회의 잠시 하고 아워홈 국밥 먹고 법대 산책 다녀와서 도넛 시켜먹었다.

12/10

점심에 라면 끓여먹고 또 한바탕 낮잠 타임 가진 뒤에 같이 씻고 비마트를 시켜서 마제소바를 해먹었다. 내려와서는 우리 둘 다 할 일을 열심히 했다.

12/11

대학영어 발표를 하고 연희에 와서 다정이 미팅 기다리면서 미도파에 앉아있는 중이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이 주 간의 시간이 눈에 좀 보인다. 기억하고 싶은 이 주였나보다.

1. 왜 우리는 남의 기억에 노스탤지어를 느낄까?

the paradox of romanticizing thg

2. 모어 화자가 아닌 이의 발화는 시와 비슷하다. 나는 영어를 쓸 때 종종 시인이 된 기분이다.

Finding nowhere

 Hi. brief breathing. Touching.